제사는 누굴 위하여 올리나.
추석.
시댁을 다녀 왔다.
결혼하기 전까지 여지껏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에 봉착 했다.
1. 의문
1) 도대체 제사는 ‘누구’를 위하여 올리며,
2) 나는 결혼 했다는 이유로 왜 ‘시댁’ 어르신을 위한 제사상을 차려야 하는가.
* * *
어릴적에 우리 집이 큰집이었던 나는, FM스타일로 1년에 최소 2번은 제사상을 준비했었던 집안에서 자랐다.
여자인 내가 전부치고, 상차리고, 치우고 하는 일을 당연하게 했기때문에 명절에는 '그냥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뿐, 왜 하는 가에 대한 질문이나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다행히(?) 집안에 또래의 아이들이 모두 '여자' 아이들 뿐이어서 비교 대상이 될 남자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아- 모두 다 같이 준비하는 거구나. 어른 남자는 쉬는 거구나' 하고 생각 했었다.
그래서 좀 힘들긴 했지만 동생들하고 어른들하고 같이 준비하면서 막 부친 전을 할머니 몰래 먹고, 누가 누가 예쁘게 만드나 하며 참 재미있게 준비했었다.
물론 그것도 중학교 정도까지였고 고등학교 이후에는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뒤...
결혼하고 나서 제사를 준비하는데, 위의 저 두 의문이 들었다.
왜냐면,
어릴때 하나의 놀이라고 생각했던 제사상 차리기가 커서 보니 준비하는 그 어떤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 * *
어머님은, 며느리와 형제가 있음에도 혼자서 대부분의 제사 준비를 해서 지치고 + 아픈 무릎이 쑤시고 + 비싼 제수 용품 값에 힘드셨고,
아버님은, 명절에 찾아 오지 않는 다른 친척들이 아쉬우셨고,
남편은, 그런 어머님이 하는 앓는 소리 + 돌아가신 어른과 좋은 기억도 없는데 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제사를 해오는 것 + 그냥 그만하면 될 것을 계속 하려고 고집하는 것 같은 부모님을 보며 짜증나하고
며느리인 나는, 나 키워준 내 할머니 제사상도 내가 차리지 못하고 + 나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나랑 관계 없는 남편의 조상만을 위한 제사상을 차리고 있으니 뭔가 억울하다.
여자인 나의 조상은 더 이상 나의 조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울먹울먹 한다.
어머님이나, 아버님이나, 남편이나, 나나 그 누구도 누구를 위해서, 왜 하는지 알지 못한채 제사를 지내고 있다.
어머님은 어머님대로 며느리인 내가 도와주길 바라고 고생하신걸 알아 주실 바라는 마음을 애두르고 서툴게 표현하시고, 남편은 그걸 보면서 기분나빠서 폭발하고, 나는 하기 싫은데 하면서 남편과 어머님 눈치까지 더블로 봐야 한다.
그 분위기가 참 그렇다.
* * *
남편이 그랬다 "명절은 그냥 하기 싫을 일 하면서 해야하는 일 하면서 지내는 날이야" 그래 그런 날이다 하고 세뇌 하고 마음을 비우려고 애썼다.
물론 다른 집처럼 여자만 준비하는게 아니라 남자인 가족구성원 모두 다 같이 준비해서 되게 편하고 좋기는 하다. 하지만 저번 설 때도, 이번 추석에도 저 루프가 반복되고 있고, 앞으로도 언제까지 저걸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턱하고 막히는 기분이다.
제사 상차림하는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는데.
죽은 사람이 이러라고 제사 상 차리라고 한것도 아닐텐데.
차라리 그런 시간에 다 같이 좋은데 가고 맛있는거 사먹고 그럼 얼마나 좋을까. 음식 준비하면서 서로 힘드네, 지치네, 에둘러진 섭섭함을 표현하고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을 것 같은데.
흠- 언제 그럴 수 있을까.
더 그런 상태로 제사상을 차리고 싶지 않은데.
명절은 좀 재미있게 다 같이 지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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